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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DA no.81 2007.04]

외화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가운데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가 열연한 주인공 캐리역은 독특한 캐릭터로 사랑받아온 인물이다. 극중 그녀의 패션 감각은 전형적인 도시의

화려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낮에는 배꼽을 드러내는 보헤미안 스타일을, 밤에는 아슬아슬한 드레스로 코디하곤 한다.
“어느 날 주인공 캐리가 뉴욕의 한 골목에서 강도와 맞닥뜨리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 강도가 주인공에게 신발까지 벗으라고 합니다. 그때 이 주인공이 난리가 난 거죠. ‘다른 건 다 줘도 이 신발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맞서기 시작합니다. 지갑이랑 돈은 다 가져가도 신발은 절대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 구두 브랜드가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입니다. 언뜻 우습기도 한데… 그만큼 구두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흔히 슈어홀릭이라고 하죠. 구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사는 매니아들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슈어홀릭이 참 많아요.”
이번 달 오너스 코너의 주인공 이경민 씨는 구두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부터 반짝인다. 그 역시 머리 스타일보다는 옷차림에, 옷차림보다는 구두에 관심이 많은 슈어홀릭이다. 그럼 그의 신발 가운데 가장 비싼, 그리고 가장 소중한 신발은 무엇일까? 바로 3천만 원을 훌쩍 넘는 푸조 206CC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발이 되고 있다.

PEUGEOT 206CC 이경민
이경민(35) 씨는 IMF로 한창 온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건설회사에 보란 듯이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른 줄에 들어서면서부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끼’는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몰랐다.
“차만 해도 그렇습니다. 206CC를 처음 본 이후 다른 차는 성에 차지도 않았어요. 다른 값비싼 컨버터블도 눈에 안 보였습니다. 차 크기, 컨셉트, 가격 모든 걸 다 따져도 206CC 이외에는 답이 없었어요. 이미 마음이 넘어갔는데 다른 차가 눈에 들어올 리 있나요.”
얌전(?)하고 평범한 검정색 EF쏘나타를 끌던 이경민 씨는 냉큼 두 번째 차로 수입차를, 그것도 연하늘색의 톡톡 튀는 푸조 206CC를 손에 넣어버렸다. 차 값도 차 값이지만 일단 수입차에다 흔히 ‘뚜껑이 열린다’는 컨버터블이다. 손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에도 지금껏 자신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206CC요? 편하기로 따진다면 국산 대형차가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획일화된 삶은 정말 싫었습니다.”
지난해부터 그의 발이 되어준 206CC는 벌써 주행거리 2만km를 훌쩍 넘어섰다. 주중에는 얌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주말이면 서류 가방 내던지고 206CC와 훌쩍 떠나는 삶이 이어졌다. 주말에

만 타는 차지만 부지런히 주행거리도 늘었다. 그만큼 일주일 만의 재회를 만끽한 한 해였다. 그런 그에게 작고 앙증맞은 컨버터블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동반자였다. 그는 “눈이나 비만 안 오면, 아니 웬만큼 장대비나 폭설이 아니라면 언제든 하드톱은 오픈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매일 타는 차도 아닌 데다, 주말에 한 번쯤 꿈꾸는 일탈인데 톱을 닫고 다니는 건 죄악(?)이라 여겼다. 그는 차에 올라 하드톱만 오픈하면 언제 어디서든 한없는 자신감에 차오른다고 말한다.
“주말에만 차를 쓰는 직장인이 많습니다. 일주일 동안 넥타이에 죄여 살다가 주말에도 틀에 박힌 대형 세단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요….”

PEUGEOT 206CC 이경민
아직 미혼인 데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뚜껑 열리는 차’를 타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주말 동안 톱을 오픈하면서 얻었던 자신감으로 다시 한 주를 생활한다는 그는 지난해 진짜로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마침내 감추고 감췄던 ‘끼’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것. 그는 1년여를 고민하며 준비해온 끝에 자신의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스스로 ‘슈어홀릭’임을 인정하는 그는 미국 현지 딜러십과 계약을 맺고 앞서 언급한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한 마놀로 블라닉은 물론 지미 추(JIMMY CHOO) 등의 패션 아이템을 수입하는 명품수입 법인을 세웠다. 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지만 대학 시절을 함께한 후배와 손잡고 시작한 만큼 회사 이름도 ‘인연’을 내세워 ‘카르마니아’(Karmania)로 내걸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올라 안정적인 수입과 미래를 보장 받았던 그는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셈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206CC가 부담이었습니다. 물론 초기투자 비용도 그리 넉넉하진 않았으니까요. 여러 번 고민했지만 절대 차를 처분할 수는 없었어요.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선택한 차가 아닌 만큼, 그로써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이 사업에서 꼭 필요했습니다.”
새 봄, 그는 자기 일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될 걸림돌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버튼 하나로 그에게 자신감은 물론 파란 하늘까지 안겨줄 206CC가 그의 곁을 지켜주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