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리스 :::

[STRADA no.76 2006.11]

화기 넘어 낮게 깔려오는, 또렷하고 차분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중년의 점잖은 신사를 그려봤다. 서두르지 않는, 그럼
에도 당당한 톤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넘쳐 흐르는 것은 그저 ‘젠틀함’이었다.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고 그를 기다리면서도, 저 멀리 그의 거대하고 웅장한 폭스바겐 페이톤이 조용히 미끄러져 와 문이 열릴 때까지도 그는 오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여느 인터뷰와 달리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를 만났다. ‘페이톤을 타는 30대 초반의 젊은 사업가’, 이것이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였다. 약속된 인터뷰이가 펑크를 냈고, 마감이 바로 코앞에 닥친 절박함을 너무나 쉽고 가볍게 풀어준 그가 그저 고맙고 멋져 보일 수밖에….

연비 좋지만 주유기 맞지 않아 고생하기도
이번 호에 소개할 수입차 오너는 서울 역삼동에 자리한 이태리 가구 ‘지오바니’(Giovanni)의 한국수입원 대표를 맡고 있는 조주열 씨다. 올해 서른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기품(?)과 점잖음이 철철 넘치는 그는 반갑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수입 대형차를 타는 젊은 사업가’의 편견을 성큼 밀어낸다.
조주열 씨는 올해로 10년째 운전을 한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운전을 시작했고, 소형차와 디젤 SUV 등 국산차를 두루 섭렵했다. 수입차는 이번이 처음. 엔트리급 수입차를 건너뛰어 폭스바겐 페이톤의 오너가 된 케이스다.
바로 얼마 전까지 국산 대형차를 타던 그가 페이톤 오너가 된 것은 그 자신조차 예상치 못하던 일이다. 그는 파사트 TDI를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으로 폭스바겐 전시장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게 페이톤 TDI를 시승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무런 말없이 서류를 챙겨 들고 다시 전시장을 찾았다. 주저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곧바로 페이톤 TDI의 오너가 되었다.
“이태리 본사를 비롯해 유럽 출장길에서 디젤차를 많이 봐왔습니다. 독일 디젤차에 대한 나쁜 선입견은 없었어요. 그쪽 사람들 정말 디젤 많이 타잖아요. 본사 임원조차 아우디의 A3 TDI를 타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유러피언의 합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봐온 그에게 디젤 수입차, 그것도 대형차는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수입차를 그것도 대형차를 디젤로 타기에 앞서 주저함도 있었을진대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털끝만큼도 후회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제 차를 인도 받은 지 고작 두 달여. 출퇴근을 주로 했지만 지방 출장을 몇 번 다녀오면서 주행거리 4천km를 훌쩍 넘었다. 장거리를 몇 번 다녀온 후에는 오히려 그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느끼고 있다.
행여 그와 같은 차를 염두에 둔 독자를 위해 오너 입장에서 느끼는 단점을 캐물었다. 한사코 손사래를 쳐가며 “결코 없다”를 외치는 그는 끝내 단점 같지 않은 단점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일단 TDI는 노멀 휠베이스 버전만 나오거든요. 롱 휠베이스 버전보다 뒷자리가 조금 불편합니다. 그리고 종종 지방에 내려갈 때는 주유할 때 문제가 생겨요. 어떤 주유소는 주유기가 맞지 않아 페이톤에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지방에 내려갔다가 주유소에 들렀는데 기름을 넣느라 애 먹은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차에 꼭 깔때기를 하나 챙겨가지고 다녀요.”(웃음)
여느 수입차, 그것도 고급 대형차 오너라면 목청을 외쳐가며 “주유기도 맞지 않는 차를 수입하느냐”며 임포터나 딜러에게 항의했겠으나 그는 오히려 점잖은 미소로 당시의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이제는 깔때기까지 챙겨 다닐 정도가 되었으니 그의 너그러운 인품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실 일부 수입 디젤차와 아직 남아 있는 지방의 몇몇 주유소의 구형 주유기는 서로 크기가 들어맞지 않는다. 서울ㆍ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초저유황 경유와 그에 맞는 주유기가 아직 지방까지 다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연비가 최대장점
이제 장점을 늘어놓을 차례. 이때부터 그의 페이톤 TDI 칭찬은 그칠 줄을 모른다. 9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으로 연료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고, 이 상태에서 서울에서 부산과 안동을 거쳐 돌아왔음에도 연료가 남아 있을 만큼 뛰어난 연비가 최고의 장점이었다. 연비 자랑을 늘어놓는 순간순간에 그의 미소는 그칠 줄을 몰랐다.
“젊은 나이에 수입차가 웬 말이냐”던, 조금은 보수적이었던 그의 부모님도 페이톤의 뒷자리에 푹 빠져든 이후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가 페이톤 TDI를 시승한 다음날 곧바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듯 폭스바겐은 한 번 경험하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매력이 가득하다.
그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가 몸담고 있는 수입가구와 수입차 업계의 유사한 사례를 조심스럽게 소개했다.
“패션과 가구 등에서 이태리 디자인을 손꼽는 이유가 그만큼 그들의 문화와 역사가 뒷받침되기 때문이거든요. 자동차도 수십 년 동안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아왔기 때문에 독일차가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두 업계 모두 국산제품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그는 수입차 오너의 반열에 들어섰다. 허영과 허세가 가득했다면 폭스바겐이나 디젤 엔진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톤 TDI는 그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더없이 잘 들어맞는 차였다. 그래서일까.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은 그에게서 페이톤의 분위기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