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리스 :::

[STRADA no.74 2006.09]

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남자, 지금의 차를 고를 때까지 마음고생 참 많았다. 그 속사정을 어찌 알았을까? 선택의 기로
에서 방황하던 그가, 용기 내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때문이다. 편집부엔 이렇듯 차종 선택에 도움을 청하는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세일즈맨 했으면 큰일날뻔 했다.

그와 처음 통화했을 때, 화젯거리는 푸조 407 HDi였다. 그가 대뜸 “푸조 407 디젤은 어떤지” 물어왔기 때문이다. 이틀 사이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했던 로드테스트와 역시 이틀 사이 경부-남해-서해안 고속도로를 종주했던 연비테스트를 통해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차 골라주다 친구 사이가 된 독자
그 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제 오너가 되었나 보나 생각하던 차에 전화벨이 울린다. “렉서스 가운데 아담하고 멋지게 생긴 모델 이름이 뭐죠?” 기억창고 속 푸조 서랍을 닫고, 렉서스 서랍을 열려는 찰나,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그가 머쓱한 듯 망설이다 말문을 연다. “설마 푸조에서 렉서스로 바로 왔겠어요?(웃음)”

그동안 그는 본지의 가격표 페이지를 펼쳐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어제 거리에서 렉서스를 한 대 봤는데, 너무 멋져서 다시 한 번 수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렉서스 IS250일 거예요, 아마.” 그는 곧 연락하겠노라는 인사와 함께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어리둥절했지만, 어차피 또 전화가 오려니 싶었다.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건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오늘 IS250 출고 받는 날이에요. 이래저래 감사합니다.” 그저 차 이름 말해줬을 뿐인데…. 그날 오후 늦게 다시 전화가 왔다. “속상해 죽겠어요. 오늘 뽑은 차를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연석에 긁었지 뭐예요.” ‘아~, 정말 못 말리는 독자다!’

결국 우린 만났다. 밥이라도 사겠다며, 그가 기어이 여의도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나이도 동갑. 그렇게 가끔씩 만나 술 한잔 걸치다 결국 우린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인터뷰에 나가고 싶다며, 한번 직장 쪽으로 와줄 수 없냐고 묻는다. 로드테스트 때 들르면 되니까, 딱히 문제될 것 없었다. 게다가 막상 친해진 뒤엔 그의 애마 이야기가 뜸해져 궁금한 것도 많았다.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간 게 벌써 몇 달 전이다. 서둘러 내려가고 싶었지만, 미리 인터뷰가 예약된 오너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오너스의 주인공 천대영 씨는 LCD 백라이트 유닛에 들어가는 광학 필름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미래나노텍(주) 기술팀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우린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그의 직장으로 향했다. LCD TV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는 주말도 없이 안성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

민감한 기술을 다루는 업체이니만큼 출입은 까다로웠다. 신분증을 맡기고 나서야, 입구의 차단 봉이 스르르 열린다. 꼬리를 물고 들어서는 혼다 레전드와 메르세데스-벤츠 S 600 L에 직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한참 기다린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렉서스 IS250, 디자인에 반해 구입 결심해
그가 운전면허증을 손에 쥔 건 1996년이었다. 몇 년 동안 어머니와 누님의 차를 전전하다, 2002년 현대 트라제를 구입했다. LPG 모델이었다. 워낙 업무용으로 쓰는 일이 잦아, 아예 회사에서 업무용 차로 인수해 갔다. 본지 편집부에 전화를 한참 건 게 그쯤이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왜 갑자기 IS250을 사기로 결심했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디자인에 홀딱 반해버렸지 뭐야.” 길에서 보고 잊혀지지 않아서, 기자와 통화해 차종을 확인한 뒤 서울 대치동의 렉서스 D&T 전시장을 찾았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기자도 가끔 이런 경우를 겪는다. 사진으론 큰 감흥이 없었다가, 직접 보곤 가슴이 뛰어 견딜 수 없는 차가 있다. 그에겐 IS250이 그런 존재였던 셈이다. 그는 트라제를 팔아 받은 돈과 그동안 알뜰살뜰 저축한 돈을 모아 선수금 2천200만 원을 내고, 36개월 할부로 구입했다. 선수금을 마련하는 것보다 어려웠던 건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그가 현재 매달 차 값으로 내야 하는 돈은 90만 원을 약간 웃돈다. 만만치 않은 액수지만, 그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가 말을 가로챈다.

“일단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아. 보고만 있어도 좋아. 그리고 또 얼마나 잘 나가는

는데. 게다가 시속 200km에서도 불안하지 않다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코너링이야. 어지간해선 밀리는 느낌을 받을 수 없어. 하나 더 있다. 승차감! 장거리 많이 뛰잖아. 차가 탄탄해 보여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서울, 거제도 오가는 운전이 편하더라니까. 워낙 조용한 탓도 있을 거야.”

주위 사람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차를 알아보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요즘 들어 주위에서 렉서스 ‘L’ 마크 모르는 사람을 못 봤다”고 말한다. 그만큼 렉서스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증거일 터다. 한편, “연비는 꼼꼼하게 체크하진 않지만 1ℓ로 10km 정도 달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IS250의 정부 공인 연비는 11.4km/ℓ.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애마 자랑 삼매경에 빠진 그에게 이제 쓴소리도 좀 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는 뒷좌석 공간이 좁은 점을 꼽았다. 키 180cm의 그가 운전석에 앉으면, 뒤에 누구를 태우기가 민망하다고 했다. 아울러 대시보드에서 원인을 딱히 알 수 없는 잡소리가 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AS센터엔 가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앞 범퍼 밑쪽에 달린 립 스포일러가 약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깨지거나 찢어지진 않는데, 범퍼와의 이음새가 살짝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음 차를 물었다. “다음 차는 좀 더 큰 녀석을 골라야 할까 봐. 드라마에서 안재욱이 몰고 나오는 거 참 예쁘던데.” 인피니티 이야기인 듯했다. 그가 덧붙인다. “렉서스 GS300도 마음에 들어.” 수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한마디 던진다. “인피니티랑 렉서스랑 어떤 쪽이 나을까?” IS250이 예뻐 죽겠다는 사람, 괜히 들쑤셨나 보다. 아마도 한동안 그의 전화가 빗발칠 것 같다. 다 나의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