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4시 20분. 셔터를 내린 병원 안은 한바탕 십자포화가 휩쓴 전쟁터에 다름 아니었다. 바지런했을 소파는 비뚤비뚤 어긋나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여성지가 아무렇게나 펼쳐진 채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벽에 걸린 큼지막한 TV는 종일 틀어대던 천연색 화면을 점 하나 남기지 않고 거둔 채 무거운 침묵에 빠져 있었다.
조명을 끈 실내엔 뉘엿거리는 오후 햇살이 비쳐 들어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너른 대기실 네 귀퉁이를 가득 채우고 내려앉은 정적은 뒷정리에 바쁜 간호사의 발자국 소리에 잠깐 물러났다가 이내 다시 고막을 육중하게 파고들었다.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몇 분이 지났을 즈음, 어스름한 복도 저편에서 그가 황망히 뛰어나온다.
“어이구,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5일제가 자리 잡으면서 토요일이 일주일 중에 가장 바쁘거든요. 게다가 오늘은 선배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서 종일 저 혼자 진료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늘어졌네요. 오전엔 수술도 있었고. 그나저나 옷이나 머리에 신경 썼어야 하는데, 이렇게 파김치가 되어서 걱정이 많습니다. 지장 없을까요?”
방어 운전이 몸에 밴 정형외과 전문의괜찮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고서야 그는 총총 사라졌다. 잠시 후 돌아온 그를 보니, 엄살이 심했던 것 같다. “자, 나가시지요. 저기 뒷문이 있어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홀가분해 보였다. 주말이 주는 충만한 기대감에 한껏 부푼 모습이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그가 치열했던 한 주에 쉼표를 찍는 순간을 함께했다. 우리는 정작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지만.
수입차 오너의 생생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련한 새 코너, 오너스의 첫 회를 장식한 주인공은 김형식(33) 씨다. 고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대학병원을 거쳐 현재 경기도 분당의 바른세상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한 그의 애마, 아우디 A4 2.0은 대학 신입생의 ‘의욕이 지나친’ 화장처럼, 뽀얀 가루를 한가득 뒤집어쓰고 있었다. “최근 빈번했던 황사 때문”이라며 그가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다 보니 흔한 기계 세차 한번 할 겨를이 없었다고.
도어를 열자 차 안은 꾀죄죄한 겉모습과 딴판이었다. 새 차 냄새가 여전했고, 가죽은 아직 까칠한 감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가 상당히 큰 편인 그가 운전석에 앉자 머리카락이 천장에 닿을락말락했다. 그의 키에 맞춘 시트는 B 필러보다 약간 뒤쪽으로 밀려났다.
“A4는 다 좋은데 뒷좌석 공간이 넉넉지 않아요. 특히 제 뒷자리에는 누구라도 태우려면 괜히 미안해져요. 트렁크도 아쉬워요. 골프백 두 개를 넣으려면 평소 싣고 다니는 짐을 몽땅 빼야 하거든요.” 기자의 기억으로, 아우디 A4에 대한 그의 불만은 ‘거기까지’였다.
시동을 걸고, 우리는 촬영을 위해 분당의 한적한 고급 주택가로 달렸다. 그의 운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차간 거리를 널찍이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흐름을 탔다. 옆 차선에서 깜박이를 켜면, 주저 없이 속도를 늦춰 공간을 내어주었다. 물음표 가득한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빙긋 웃으며 말문을 연다.
“제가 지나치게 방어 운전하죠? 운전면허는 1997년에 땄으니까 또래에 비해 약간 늦은 편이지요. 운전은 지금껏 계속 했어요. 조심조심 다니는 까닭은 제가 겁이 많은 편이라 그래요.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환자를 자주 접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어요. 남의 일 같지 않거든요. 사고가 예고하고 닥치는 게 아닌 이상, 스스로 조심하는 게 최선 아닐까요. 게다가 의사라는 직업, 허우대는 멀쩡해 보여도 결국 육체노동이거든요. 제 몸 제가 아껴야죠.(웃음)”
이라크서 땀 흘려 번 돈으로 산 첫 수입차그는 “최근 10년 사이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의 부상 정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친 환자가 많았단다. 대부분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안전벨트 착용률이 높아진 데다, 에어백, ABS 등 자동차의 안전 장비가 대중화되면서 부상률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고 한다.
“교통사고는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재앙이에요. 의식이 없는 환자 같은 경우 응급실에 오면 우선 신경 전문의에게 보냅니다. 의식을 되찾아야 치료가 가능하니까요. 그렇게 무의식 상태로 몇 개월을 보내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의식을 찾는다 해도 환자를 기다리는 치료는 길고도 고통스러워요. 누구든 응급실을 며칠만 지켜보면 ‘안전운전 전도사’로 바뀔 겁니다.”
그가 아우디 A4를 고른 이유 역시 안전 때문이었다. 애당초 그는 현대 NF 쏘나타나 그랜저 TG를 사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친구를 데려다주는 길에 아우디 전시장에 서 있던 ‘어여쁜’ A4를 보고 마음을 쏙 빼앗겼다.
“처음에는 그게 아우디인지, A4인지도 잘 몰랐어요. 관심을 갖고 지내다 보니 종종 눈에 띄는 A4가 그렇게 크고 눈부셔 보이더군요. 잡지를 무심히 넘기다 광고를 발견하면 뛸 듯이 반가웠고요. 주위에 물어보니 입을 모아 안전한 차라고 칭찬하더군요. ‘젊은 실업가가 타는 차’라는 이미지도 마음에 쏙 들었고요.”
지난해 5월, 결국 그는 서울 송파의 아우디 딜러 참존에서 바라마지 않던 아우디 A4 2.0을 품에 안았다. 군의관 자격으로 이라크의 자이툰 부대에서 머무는 동안 아껴 모은 급여를 종잣돈 삼아 구입 자금을 마련했다. 스스로 땀 흘려 번 돈으로 산 차라 더욱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섭외 당시 한사코 “차를 잘 몰라서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기자와 만나 차에 대해 처음 물은 말은 “제 차 굴림 방식이 어떻게 되나요?”였다. 그는 “아직 모르는 게 훨씬 많기에 아우디 A4와의 하루하루가 더없이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A4에 대한 느낌을 묻는 건 무리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감으로 느끼는 건 전문 기자나 일반 오너나 다를 게 없었다.
“특유의 묵직한 느낌이 좋아요. 고속에서도 전혀 불안하지가 않아요. 아우디에 너무 길들여지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에요.(웃음)”
글·김기범 기자(cuty74@istrada.co.kr)｜사진·이영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