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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8/01/21 00:56 | 조회 : 2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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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비좁은 거리를 요리조리 쏘다니는 앙증맞은 경차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 개인적 취향에 맞기도 하거니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도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출중한 ‘귀염둥이’가 많아서다. 병행수입업체를 이용하든, 일본의 중고차 경매장에 건너가서 페리에 싣고 오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모델이 차고 넘친다.
워낙 메뉴가 다양해 고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터보로 출력을 키운 건 기본. 경승합차까지 AT와 풀타임 네바퀴굴림 방식을 고를 수 있다. 하드톱 컨버터블도 있고, 엔진이 뒷좌석 엉덩이 받침 아래 달린 별종도 있다. 일찍이 단종 됐지만, 미드십 구조에 걸 윙 도어까지 단 모델까지 있었으니, ‘경차 왕국’ ‘경차 천국’이란 표현엔 과장이 없는 셈이다.
경차에 관심이 쏠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탁월한 실용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만 갖춘 성격이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세컨드 카로 경차를 애용하는 이유기도 하다. 폭스바겐 골프도 갖고 있지만, 교통체증·주차전쟁과 씨름하며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땐 경차만한 이동수단이 없다. 공영주차장과 고속도로 통행요금 50% 할인도 외면할 수 없는 유혹이다.
지금까지 탄 경차만 넉 대다. 티코로 경차의 매력에 눈을 떴고, 듀얼 에어백에 ABS까지 달린 ‘풀 옵션’ 비스토를 타면서 ‘변태’ 소리 좀 들었다. 최근엔 한동안 갖고 있던 마티즈Ⅱ를 팔고, 올 뉴 마티즈를 샀다. 지금껏 겪은 경차의 종합 순위를 매긴다면 으뜸은 역시 마티즈Ⅱ. CVT가 속 좀 썩였지만, 실내 공간과 연비 모두 올 뉴 마티즈를 앞서는 까닭이다.
일본 경차에 늘 군침을 흘려왔지만 직접 타볼 기회는 없었다. 배기량을 키웠을 뿐 크기와 구성이 스즈키 알토와 판박이인 티코로 어렴풋이 분위기만 짐작했을 뿐이었다. 도쿄 모터쇼와 클래식 카 취재를 겸한 이번 일본 출장길에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가 찾아왔다. 도쿄에서 유학 중인 선배 기자가 “시승차를 빌렸는데, 타보지 않겠냐?”고 전화를 걸어온 거다.
옳다 거니, 유락초센(有樂町線)을 타고 선배가 사는 토요스(豊洲)로 향했다. 토요스는 동경도 강동구에 속하는 곳. 오다이바(お臺場)에서 그리 멀지 않다. 바다와 아주 가깝다는 얘기다. 푸른 바다 넘실대는 항구가 코앞이고, 제법 큰 운하도 유유히 흐른다. 예전엔 공업 지대였는데, 최근 재개발로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어엿한 신도시로 탈바꿈한 동네다.
보름 전 이삿짐을 풀었다는 선배의 집은 네 개 동, 1천 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 로비는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고급 주상복합단지와 비슷한 분위기다.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찬 도심의 주택단지만 보다가 널찍한 공간에 들어선 아파트를 보니 여간 낯선 게 아니다. 이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주차타워를 따로 갖췄다는 점. 일본에선 흔치 않은 시설이다.
베란다에서 아파트 앞마당의 주차장을 살피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좀처럼 세단을 찾기 어려웠다. 독자 여러분도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시길. 차의 장르를 구분할 수 있는 50대 가운데 세단은 단 7대 뿐이다. 나머진 죄다 미니밴과 왜건. 선배에게 물었다. “이 차들 세컨드 카일까요?” 선배가 말한다. “아닐 거다. 일본인들은 주말에만 차를 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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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잘 팔리는 차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세단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선 미니밴·왜건·경차 삼총사가 시장을 이끈다. 북미 중형차 시장을 석권하며 미국 자동차 메이커의 자존심을 무참히 구긴 토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도 정작 안방시장에선 ‘미운오리새끼’ 신세를 면치 못한다.
30~40대 중산층이 모여 사는 단지여서 그런지 경차가 별로 없었다는 점만 빼면, 이 주차장은 일본 자동차 시장의 현황을 비추는 거울에 다름 아니었다. “일본에선 차 없이도 살 만해. 대중교통, 특히 전철과 지하철이 워낙 잘 깔려 있으니까. 이제 일본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는 분위기지만, 일본인들 오히려 지갑을 꽁꽁 닫는 분위기야.” 선배의 설명이다.
2006년 일본에서 경차를 제외한 새 차 판매대수는 358만7천292대로 2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경차는 202만 대가 팔려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판매된 새 차 10대 가운데 3대 이상이 경차였다는 얘기다. 나머지 7대 가운데 4대는 소형차. 중형차 이상은 3대 정도 팔린 셈이다. 또한, 지난해 베스트셀러 10위까지 모델 가운데 6차종이 경차였다.
경차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본에서 자동차를 소유하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 차값만 따지면 중대형차를 살 사람이 많겠지. 그러나 주차비·연료비·세금·검사료 등 유지비를 감안하면 부담이 만만치 않아. 게다가 일주일에 5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잖아. 경차면 충분하다는 거지. 아울러 구매욕을 자극하는 예쁘고, 성능 좋은 경차가 많기도 하고.”
일본의 경차는 세세한 항목까지 엄격한 규제로 묶여 있다. 배기량은 660cc를 넘지 못한다. 800cc로 시작해 곧 1천cc로 늘어날 우리의 기준보다 훨씬 야박한 셈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진화하다 보니, 기술력이 제대로 무르익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소형차와의 판매 간섭을 막기 위해 “경차의 최고출력은 120마력을 넘어선 안 된다”고 빗장을 걸었을 정도다.
선배의 집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 뒤 기대에 부풀어 주차타워로 나섰다. 선배가 가져온 시승차는 다이하쓰가 지난 6월 19일 처음 선보인 소니카(Sonica). 파워트레인은 코드네임 ‘KE-DET’의 직렬 3기통 658cc 터보 엔진과 CVT. 6천rpm에서 최고출력 64마력, 3천rpm에서 최대토크 10.5kg·m를 뿜는다. 일본의 10·15모드 공인연비는 23km/ℓ(2WD).
소니카는 예쁜 경차는 아니다. 너무 밋밋하게 생겼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여운 스즈키와 대조적이다. 길이×너비×높이 3천395×1천475×1천470mm, 휠베이스 2천440mm로 크기는 마티즈보다 컴팩트하다. 너비 제한 때문에 좌우 시트가 바짝 붙어 암레스트는 먼저 팔 올리는 사람 차지다. 대신 뒷좌석 무릎 공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넓다.
인테리어에 쓴 플라스틱이나 직물은 분에 넘치게 고급스럽진 않되 싸구려 냄새 또한 풍기지 않는다. 옹색한 공간이지만, 각종 스위치를 조작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시승차가 워낙 사치스러운 버전이어서 내비게이션, 오디오 시스템 등 각종 장비는 어지간한 소형차가 부럽지 않다. 운전 자세도 편안하고, 무엇보다 사방팔방 훤히 내다보여 답답함이 적다.
소니카의 개발목표는 경차의 틀에 ‘뛰어난 품질’과 ‘운전의 즐거움’을 담는 것. 타깃은 ‘프리스타일 커플’, 월 판매목표는 2천 대란다. 시승차는 최상급 버전인 ‘RS 리미티드’로 모모 스티어링 휠에 15인치 광폭 타이어까지 신겼다. 값은 소비세 포함, 141만7천500엔. 오랜만에 오른쪽 운전석에 앉으니 긴장이 밀려든다. 차폭이 좁아 어색함이 그나마 덜하다.
시동을 걸었지만, 엔진 소리는 거의 스미지 않는다. 조심조심 큰 길에 합류해 액셀을 힘껏 밟자, 엔진회전수가 용솟음치며 맹렬히 달려 나간다. 고회전에서의 희미한 고주파 사운드와 터보 랙 없이 즉각 튀어나가는 맛이 흡사 하이브리드 카 같다. 타코미터가 있고, CVT지만 7단 수동기능을 갖춰 내 의지대로 조율한다는 뿌듯함을 안겨 준다.
핸들링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경차엔 과분한 타이어 때문에 승차감도 제법 튀었다. 그러나 조립·감성품질과 성능, 인테리어는 올 뉴 마티즈를 멀찍이 앞서 있었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일본 경차의 저력을 엿보는 동시에 막연한 환상을 거둬내기엔 충분했다. 그나저나 걱정이다. 직접 몰아보고 나니, ‘지름신’의 기승이 한층 거세어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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